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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드소마>리뷰 - 난해한 영화. 공포인가 고어인가? ~~
    카테고리 없음 2020. 2. 12. 05:24

    (포 1러시아를 포함하고 있슴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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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공포영화 중에서 가장 화제가 된 <미드소마>를 봤어요. 이 영화를 만든 앨리 애스터 감독이 <유전>으로 많은 트렌드를 얻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저는 <유전>을 본 적이 없는 사람으로서 어떤 작품인지 후속작인 <미드소마>까지 큰 관심을 끌지 궁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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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드소마>는 홍보 방식부터 독특했습니다.기존의 어두운 밤을 가운데 펼쳐지는 공포영화가 아니라 밝은 오전을 가운데 펼쳐지는 공포영화라고 선전하는 것부터가 심상치 않습니다. 이처럼 기존 공포영화의 공식과 같은 방식을 파괴한 영화로 홍보하는 방식은 컨저링 이후 처음이라 더 관심이 가는 영화였습니다. ​ ​ ​ ​ ​ ​ 게다가 국내의 포스터에는 '90년에 한번 9일의 축제 자네는 선택된.'라는 문구를 사용했어요. 아주 가끔 열리는 또 하나의 축제 사이에 펼쳐지는 잔혹시극이라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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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소티·데이즈 오브 나이트>의 상념도 나면서 밝은 곳에서 1어 잘하는 잔혹극다는 점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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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물공포영화로 유명한 <루이즈>를 떠올리기도 하는 영화였어요. 이런 의견을 하면서 <미드소마>를 봤어요. 어차피 사람이 의견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소재는 모두 넘치고 자신 있는 상황에서 영화가 대등한 상념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요.하지만, 이 영화......난이도가 매우 높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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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의미심장한 그림이 많이 등장하지만, 그림을 이해하기 전에 영화 이야기부터 이해하기 쉽지 않아요. 주인공의 초반 불행과 스웨덴에서 겪는 하지재의 비극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그중에서 알기 쉽지 않네요. 게다가 영화 자체가 대사가 많지 않고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들어오는 정보도 많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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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뿐만 아니라 이 영화는 고어성이 너무 강해서 다시 보기를 싫어해요. 고어성이 너무 강해서 내가 공포영화를 보러온건지 고어영화를 보러온건지 헷갈릴 정도야. '고어' 정도가 너무 강해서 보는 내내 눈살을 찌푸리고 화면에서 시선을 물들이게 됩니다. 보면서 생각하기로는 감독님이 머리를 많이 쓰신 영화인 건 알겠는데 영화 자체가 너무 불친절하고 잔인한 장면들로 가득한 문재투성이 영화라고 보기에는 힘들었지만 마지막에 큰 반전을 주었던 <메멘토>가 그리워지는 영화였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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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멘토는 보면서 무슨 얘기인가 싶어 골치 아팠던 것은 미드소마와 비슷하지만 마지막 반전을 통해 그동안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것 이상의 충격을 주고 그동안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영화였습니다. 그에 비해<미드소마>는 마지막에 내가 이해한 것이 옳다고 생각되며, 이<하지제>를 여기까지 잔인하게 표현할 필요가 있다고 자신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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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유튜버들과 블로거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칭찬하지만, 저에게는 굉장히 혼란스러운 영화입니다. 공포영화라는 큰 틀 안에 고어영화가 있기도 하지만, 이 영화의 공포를 다루는 방법은 서우 같은 고어영화의 방식을 다수 차용한 고민이 많다. 어디선가 위험이 닥치고 죽는 사람은 잔인하게 죽습니다. 이것이 이 영화의 공포방식입니다.어디서 두려움이 올지 모르고 연출을 하는데, 이 부분에 있어서 아쉬운 부분이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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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제 중간 동료가 사라지는데 주인공을 빼고는 아무도 거기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이게가장어이가없는것은사람이눈앞에서죽고그강해지는사람이없어졌다는것에별로관심을가지지않는다는것입니다. 또 이 영화는 사람이 사라질 때 하루에 두명씩 모습을 지웁니다. 영화의 배경은 스웨덴에서도 아주 깊은 산골마을이 본인과 다름없는 곳이지만, 이런 곳에서 사람이 한 명만 없어지면 그 사람을 찾기 위해 마을을 헤매도 모자랄 텐데, 촌락 사람들의 예상만 믿고 찾는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은 노인이 자살하는 풍습을 자신의 전통이라고 예기하는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인데.주인공 일행의 동료가 없어졌을 때도 반응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두 사람이 사라진 해안에 두 사람이 추가로 사라진 상황이지만, 주인공은 이를 수상히 이쵸크눙 체하고 그 이상의 행동을 보일 수 없습니다. 주인공은 영화 초반부터 큰 심정의 상처를 갖고 시작했기 때문에 비정상적이더라도 주인공 남자 친구까지 실종된 친구를 찾는 데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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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다가 그들은 동네 사람들이 뭔가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보는 입장에서 답답했습니다. " 나쁘지는 않다"가 스스로"대나무의 소음"을 선택한다는 데 변함 없이 영화는 "불친절"정도가 심하고, 이 2가지가 섞이고, 후반부의 스토리는 그저" 흐르는 채" 보게 된 상태를 만들겠습니다. 영화를 깊게 보는 것이 습관이 된 사람들에겐 달리 보는 것이 힘들겠지만, 일단 영화는 어떤 재미든 집중시키는 재미가 우선이라고 보는 저에게 영화 중반부터 ???라는 견해로 보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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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의 설정상 모순에 대한 설명도 없는 것이 보고, 자신감에 찬 감정을 주는 데 일조할 겁니다. 영화 중간에 하지제를 지내는 마을 공동체 유지 방식에 대한 정보가 뿌려집니다. 이들은 장로에 의해 교미가 허용되기 때문에 근친상간은 각별한 경우가 아니면 성립할 수 없고, 필요한 경우 외부인을 부르기도 합니다. 여기서 근친상간은 장난인 양, 진심인 양 따로 질문이 오가면서 이 별난 동네에서도 피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희한하게도 마을 성경의 신 내리기를 그 다소 그늘이 지는 소녀는 근친상간을 통해 태어난 아이임을 알려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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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다시 한번 머리가 아파집니다. 이 마을은 특이한 마을이긴 합니다. '태양'을 숭배하고, 마을 곳곳에 태양을 상징하는 건축물이 있습니다. 게다가 하지제는 결국 태양을 숭배하는 의식입니다. 다만, 이 마을이 해를 숭배한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 마을은 사람들의 일생을 마치 윤회처럼 소견합니다. 죽으면 new의 어린이로 태어나면 소견을 잡고 사람의 인생은 마치 계절과 같아서 그 주기를 18년에 자신 무엇을 4계절의 마지막 겨울, 72살이 되면 스스로 죽 소음을 맞이합니다. 이제 그들이 자살을 왜 의식적으로 사용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근친상간을 통해 태어난 아이가 중요한 것일까요? 그들의 혈통을 유지하면서 신의 계시를 받기 위해서라고 말한 것 같은데 이것이 이 영화의 말과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의미심장한 고민만 줄게요. 제가 해석하지 못한 것 하나 확률이 크고, 그 다음에는 맥거핀 하나일지도 모르지만, 마지막에 밝혀진 바로는 주인공 하나행은 결국 의식의 제물이라 죽을 운명인데, 굳이 "성경"을 이용하여 유인한 후 대나무 하나가 필요했던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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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는 마약과 함께 부락 특유의 환각제를 이용한 화면이 흔들리는 효과를 자주 사용한다. 마치환각과현실의구분을없애기위해사용한것이거나시간적으로불안한감정을주기위해사용한것이라고생각됩니다. 고란효과는 이 영화 특유의 도도함과 기괴함 때문에 제게는 거북하게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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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든 주인공이 있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인공에게 무엇이 있었느냐는 거예요.영화를 보면서 초반 대가족의 비극과 하지재가 대체 무슨 관계가 있어서 이 두 가지 요소를 한 영화에 넣었는지 생각해봤어요. 이 사고는 영화가 끝나고 자기한테 갈 때까지의 사고였는데 마지막에 주인공이 웃는 것을 보고 한 번 생각해 봤는데요.주인공은 동생으로 인해 대가족을 시간으로 인한 필연적인 죽음이 아닌 결심적인 죽음으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은 '하지제'를 진행하는 마을의 필연적인 죽음을 거부하고 의도적으로 72세에 죽음을 맞는 모습이 거의 비슷합니다. 이런 점 때문인지 주인공은 자살하는 바위에 대한 환각을 볼 때 대가족들이 그 바위 근처에서 죽어 있는 환각을 보기도 합니다. 하지철 주인공 하나행을 이끌어온 펠레와 주인공과의 연관성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펠레와 주인공 대니 전체의 대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펠레는 어릴 때 대가족을 잃고, 대니는 최근 잃은 차이입니다. 이것에 대해 펠레가 대니에게 내용합니다. 이곳은 대가족을 잃은 나를 받아주고 있고 자신도 이곳을 대가족처럼 여긴다고 한다. 대니도 이곳을 대가족처럼 아낄 수 있다고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때가 자살하는 두 노인이 자신에게 온 그는 이를 건너는 사람이 있느냐는 생각에서 부정적으로 봤으나 영화 후반부에 대니가 5월의 여왕이 된 뒤, 옆에 있던 사람이 "이것은 대가족이에요? 자매님! 이라는 걸 보면 대니가 그들의 대가족이 되는 과정을 그리는 게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아요. 정지용 결국에는 잔인하고 기괴한 '하지제'는 이 영화가 공포영화이기 때문에 있는 요소 하나일 뿐이고, 중점적으로 봐야 할 것은 대가족을 잃은 대니가 어떻게 이 마을의 꽃밭이 될 것인가 하는 점일 것입니다. 게다가 대니는 이 영화 내내 웃음이 없어요. 마지막 장면과 5월의 여왕이 되는 장면을 제외하면입니다. 이것이 의의심장하고 대니는 초반부터 동생의 이상행동에 시달리며 대가족의 죽음으로 비통함을 느꼈고, 자신을 경원하는 동료들 때문에 불쾌하고 기괴한 마을 때문에 불안해하고 남성칭구의 불륜으로 절규까지 했던 인물입니다. 그런 인물이 웃는 이유가 뭔지 하나 생각해 봤어요. 우선 5월이 여왕이 되는 춤을 출 때 웃은 이유는 그녀가 스웨덴어를 이해하면서 기꺼이 웃었지만 사실상 그녀의 생각을 누군가 소통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로 미소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대가족, 칭구, 남칭구 전체에게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불쾌한 대화만 오갈 뿐이었습니다" 펠레와는 대화하고 있지만, 그녀는 남성 칭구가 있어서 불쾌해 보였어요. 그러면 신무를 출 때는 같은 여자들끼리의 대화였기 때문에 불편함 없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것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웃은 이유는 그녀의 모든 고통이 끝난 순간이라 웃은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가족, 칭구를 잃는 불행과 남성 칭구의 불륜을 목격한 그녀에게 눈에 보이는 나머지 불행은 불륜을 저지른 남성 칭구입니다. 마지막이 되면서 사실상 그녀는 마을의 하나가 되었고, 불행인 남성 칭구가 불에 타 죽었고, 그녀에게 행동에 제약이 되는 불행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남칭에게는 비극이지만, 그녀에게는 앞으로 아무런 제약 없이 마을의 공동체로 남을 수 있게 되었기에 웃지 않았나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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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가장 화제가 된 공포영화 <미드소마>에 대한 리뷰를 써봤어요.예상의 깊이는 얼마나 아름답지 않고, 깊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이 영화의 고어성 때문에 더 이상 파고들 수 없어요. 이 영화는 공포영화가 맞는지부터가 사건인데요. <토르> 같은 고어 영화도 공포영화의 범주에 들면 공포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 영화는 공포라기보다는 그냥 색이 밝은 고어 영화라고 소견합니다. 이 영화는 호불호가 갈린다는 글을 본 적이 있지만 이 영화는 처참하고 기괴해서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영화인지 알고 싶어 한번 보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2번 3번 보기에는 부적합한 영화로 소견합니다. 나중에 가끔 해석 내용이 실리면 제가 소견했는지 알아봐도 이 영화는 다시 볼 게 없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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